노동복지문화예술
No.3002
추천 3조회 8504-01
[No.149]추천 3조회 85

무명 배우들은 언제까지 가난하고 부당하고 참으며 울어야 하나요?

안녕하세요.

저는 활동 10년차 무명 배우입니다.

20대 중반에 데뷔하여 30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데뷔 초에는 가난을 견뎌내고 10년만 버티면 삶의 질이 좋아질거라 꿈을 꾸었습니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며 오디션을 보고, 운이 좋게 작품에 들어가면 촬영 기간동안 결국 아르바이트는 그만 두어야 하는 삶의 반복 이었습니다.

스케줄을 조율해주는 좋은 업장을 만나도 눈치가 보이고 미안해서, 혹은 이만한 업장을 만나기도 쉽지가 않아서 눈물을 삼키며 오디션이나 촬영을 포기했던 적도 있습니다.

월세는 내야 하니까요.


지금 부터 제가 할 이야기는 총 세가지 입니다. 당장 생계와 관련된 문제 들입니다.



1.단역 배우의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안전등에 관한 처우 개선


필모그라피 하나 하나가 소중해서 대사 한마디 있는 역할을 하러 새벽에 대중교통을 겨우겨우 이용해가며 현장에 다녔습니다.

콜 시간이 새벽이면 전날 내려가서 숙박을 하는데 최저 임금이란게 존재 하지 않아서 하루 10만원 받는 촬영에서 교통비와 숙박비로 오히려 내 돈을 써가며 촬영을 해야 했던 적도 있습니다.


제가 일을 시작할때만 해도 상업 현장에 처음 나가는 단역 배우들이 적어도 30만원을 받아야 한다는 선배님들의 말씀을 많이 들었고, 실제 그렇게 받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kbs,sbs 등의 공채 탤런트 시스템이 살아있던 때라 드라마가 아니라 영화 촬영을 가도 그래도 최소한의 금액은 지켜주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2년 3년 지나면서 ott 시장이 커지고, 공채는 없어지면서 사정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겪었던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유명배우들이 나오는 상업영화 현장이었습니다.

몇십년만에 가장 추운 겨울이라며 영하 18도가 기록되던 겨울이었습니다.

시나리오 배경상 밤시간, 얇은 가을옷을 입고 밤을 지새워 새벽에 동틀때 끝나는 촬영이었습니다.

촬영에 특수 피분장까지 한채로 피를 묻힌 몸에서 하얀 김이 피어오를정도로 추워 덜덜떨며 수십명의 배우가 촬영을 했습니다.

당시 누구 한명 저체온증으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아무도 죽지는 않았습니다만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추위를 녹여줄 대기 공간은 마땅치 않았고, 그나마 현장 근처에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석유로 돌려 바람이 나오는 온풍기? 3대가 전부 였습니다.

잠시 쉴때 그 온풍기 앞에서 수십명의 배우가 가장 따뜻한 곳을 점하려 소리없는 눈치싸움을 해가며 버텼습니다.

밀폐된 비닐하우스에서 그 온풍기 앞에서 있다가 코를 풀면 쌔까만 코가 나왔습니다.

오후 4시에 현장에 도착해 분장을 하고 밤을 새워 다음날 동이 틀때까지 촬영하고 받은 돈은 15만원 이었습니다.

같이 갔던 제 친구는 그나마도 10만원을 받았습니다.


촬영전 오디션을 보고 계약을 할 당시에도 그 금액은 부당하다 생각했지만

필모그라피 한줄이 아쉬운 배우들은 모두 계약서에 서명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안하는 선택지도 있었겠죠. 그치만 울며 겨자를 먹을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으니깐요.


무튼 그때를 기점으로 단역 최저 30이라는 암묵적 약속은 사라진듯 했습니다.

다른 작품에 다녀온 많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분노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으니까요.


또 몇년전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현장에서도 52시간 근무가 점점 지켜지고 요새는 상업현장은 거의 지켜지는 추세입니다.

또 현장 스텝들은 노조가 생기면서 처우가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최저 임금도 잘 지켜지고 있고요.

액스트라의 경우에는 액스트라 전문 업체에서 출연자들을 관리하면서 야간 1.5배 시급도 잘 지켜지고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이제 만만히 깎을수 있는 돈은 단역배우들의 출연료라는 점입니다.

실제 위에 예시로 들었던 현장에서 엑스트라 분들은 야간 시급1.5배도 모두 지켜 받았습니다.

같은 현장에서 단역배우들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기때문에 현장으로 이동하는 몇시간을 제외한 12시간의 밤샘 촬영을 하고 10만원, 15만원을 받았지만요.



2.프리랜서 건강보험료 책정은 정말 합리적인가?


최저 시급도 안지켜지는것만이 문제는 아닙니다. 건강보험료 책정에도 문제가 있다 생각합니다.

직장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프리랜서 배우들은 3.3프로를 떼고 출연료를 지급 받고 그에 대한 종합소득이 매겨집니다.

그걸 기준으로 내후년의 보험료가 책정됩니다.


정확한 시스템은 모르겠지만 여태 제가 겪어온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만약 22년도에 1년간 총 1000만원을 벌었다 합시다.

1월에 일해서 600만원, 4월에 200만원, 6월,7월에 100만원을 촬영 일을 해서 벌었다고 칩시다.

24년도에 책정된 보험료는 총소득 1000만원에 대하여 매겨집니다.

그럼 소득이 발생한 일에 대해 직접 '해촉증명서' 라는 것을 떼어서 연말 연초에 건강보험공단에 보내야 합니다.

계약서를 작성했던 회사가 아직 존재한다면 해촉증명서를 받을 수 있겠지만

회사가 사라진 경우도 종종 있어 600만원에 대한 해촉을 받지 못하면

계속 회사에 소속되어 매달 600만원을 번것처럼 되어 보험료가 오르게 됩니다.


게다가 프리랜서의 특성상 수입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수입이 괜찮은 해도 있고 절망적으로 못 버는 해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2년전 수입이 괜찮았다가 1년전부터 수입이 없는 상황이 되어도

2년전 수입으로 보험료가 책정되기 때문에 높아진 보험금을 돈이 없는 2년후인 현재에 감당해야 합니다.

돈을 벌었을때 내는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안그래도 힘든 상황에서 고정비용 10만원이 더해지는 것은 큰 일 아니겠습니까.


만약 4대보험이 되는 고정 아르바이트를 들어가면 직장가입자로써 제가 부담하는 보험료는 낮아지겠죠.

그렇지만 언제 잡힐지 모르는 촬영때문에 고정 아르바이트를 하기가 쉽지 않아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무명이라도 제 직업은 배우니까요.


못버는것이 자랑은 아니지만 나름 고군분투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두어번 예술인 복지재단에서 지원금도 받은적이 있기에

언젠가 유명 배우가 되어 돈을 잘버는 사람이 된다면 세금 내는것 얼마든지 아까워 하지 않고 내겠다는 다짐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프리랜서들에게 적용되는 보험료 책정 기준이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방법이 뭔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방법이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3. 광고 에이전시에 대한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읍소입니다.


광고 모델이 되려면 광고 에이전시에 배우 등록을 해야합니다.

에이전시에 가서 사진을 찍고 영상을 남기고 연기를 하고 오면 광고주와 감독들이 픽한 배우에게 연락이 갑니다.

유명한 셀럽들이야 몇천만원씩 받는다지만 무명 배우들은 아닙니다.

광고 페이도 전에 지켜지던 암묵적 최저 룰이 깨진이 오래입니다.


3달에서 1,2년 동안 수천번 송출되는 광고에 출연하는 비용으로 30만원 50만원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에이전시 수수료 입니다.

에이전시 수수료는 30%로 대부분 고정되어 있습니다.

만약 6개월동안 송출되는 광고에 출연하는 댓가로 100만원을 받는다 하면 에이전시에서 30만원을 가져갑니다.

500만원을 받는 경우에도 30프로인 150만원을 떼어갑니다. 1000만원을 받으면 300만원을 가져갑니다.

단지 소개비로요.

가끔 20프로로 하향해주는 경우도 있다지만 제가 겪은 바 거의 없는 일이고 그것은 에이전시 직원의 재량입니다.

30프로의 수수료는 현장에 가는 모델,배우들에게 교통이나 뭔가를 제공하는 비용인가? 아닙니다. 그저 소개비인 경우가 9할입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용역비를 지급하는 시기도 매우 늦습니다.

저는 지금 24년 9월에 성우로 녹음한 광고 녹음비를 25년 2월인 아직도 받지 못했습니다.

광고 용역은 일을 하고 바로 돈을 받는게 아니라 송출 후 3개월이 일반적 입니다.

송출이 안되는 경우에는 돈을 못받는 경우도 있고 50프로만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 경우엔 6개월 7개월 걸려 지급받은 일들도 있습니다.


광고 에이전시에 대한 법적인 규제가 마련되어야 출연 노동자에 대한 권리가 지켜질것입니다.



제가 10년간 겪은 현장에서의 삶은 행복한 순간도 물론 있었지만 부당함에 화를 참아야 하는 일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선택받아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누군가에게 싫은소리 하기 쉽지 않습니다.

다음 일을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소문이 나면 안되니까요.


노조에 가입하면 되지 않느냐? 할 수 있습니다.

제 주변 보통의 경우 노조 가입비를 내는것이 처음에 부담을 많이 느낍니다.

대체로 가난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노조에 가입했다는 것 만으로 부당함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매우 많이 갖고 있습니다.

배우 노조가 일을 잘 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고 도움을 받은 예도 실제로 많이 보았지만

현장에서 만난 배우들의 인식은 대체로 그렇습니다.



긴 이야기의 마지막으로 제가 몇년전 어떤 제작사의 횡포에 부당함을 얘기했다 잘리면서 어떤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로 마무리 하려 합니다.


"유명해 지기 전에 고발하고 싸우기 시작하면 너만 도태된다. 싸움은 유명해지고 힘이 생겼을때 해야 한다. 그때까지는 참고 견뎌라."


그렇지만 우리 위의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싸워주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바닥에 있는 배우들은 가난하고 부당하고 참으며 울어아 하나요?

현재 토론Q 유사질문 목록
제목작성자댓글관심추천조회수등록일
댓글 0